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류큐 왕국 (문단 편집) ==== 사쓰마의 침공 ==== [include(틀:전근대 일본의 대외전쟁)] [[전국시대(일본)|전국시대]] 당시 [[규슈]]를 거의 통일할 뻔했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실패한 [[사쓰마]]의 [[시마즈|시마즈 가문]]은 [[임진왜란]]에서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게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 요시히로]]가 서군 편에 붙는 바람에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미운털이 박힌 [[도자마 다이묘]]가 되었다. 사쓰마 번은 이러한 곤란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류큐를 노렸다. 사실 이전부터 사쓰마 번은 류큐국에 시비를 걸어오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준비할 무렵에도 류큐에 군량미를 내놓아라, [[히젠 나고야성]][* [[아이치]] 현의 대도시 [[나고야]]에 있는 성이 아니라, [[사가현]] [[가라쓰]]시에 있는 성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중심 후방 거점이었다.] 축조 비용을 분담해라 등등 여러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류큐국에서는 이 요구들을 다 받아주지는 않았지만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하여 일부만 받아주었다. 1608년, [[시마즈 타다츠네]][* 島津忠恒. 사실 1606년에 시마즈 이에히사(島津家久)로 이름을 고쳤는데, 숙부 [[시마즈 이에히사]]와 이름이 한자까지 똑같아서 헷갈리기 쉽다.]는 사신을 보내 [[에도 막부]]에 조빙(통교)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류큐 조정에서는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 삼사관(三司官, 재상)의 하나였던 쟈나 웨카타 리잔(謝名親方利山)이 깽판을 부려 사신을 모욕했고, 사쓰마는 류큐 침공을 결심했다. 류큐 왕국 사람들은 류큐/일본식 이름인 야마토나(大和名)와 중국식 이름인 카라나(唐名)를 함께 사용했다. 쟈나 웨카타 리잔의 카라나는 테이도(鄭迵)였다. 쟈나 리잔의 후손 중엔 각본가 [[우에하라 쇼조]]가 있다. 1609년 3월 4일 사쓰마에서 무장 카바야마 히사타카(樺山久高)가 3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류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3월 7일에 [[아마미 제도]]의 아마미오오시마(奄美大島)를 점령한 이후, 차례차례 섬들을 점령하면서 본토로 진군하고 있었다. 그 이후 3월 25일에 류큐 왕국의 본토에 있는 [[나키진]]의 운텐항(運天港)에 도착, 이틀 뒤 [[나키진]] 구스쿠(今帰仁城)를 함락시켰다. 이후 [[우라소에 성|우라소에 구스쿠]](浦添城)를 함락시킨 이후, [[슈리성]] 앞까지 진군해 나갔다. 류큐국은 저항을 시도했으나 사쓰마군의 맹렬한 조총 세례에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었다. 4월 1일, 사쓰마군이 [[나하시]]에 도착하자, 류큐국과 사쓰마는 류큐의 왕자와 삼사관을 인질로 보내는 것으로 화의를 맺었다. 비록 류큐 왕국이 약소국이었지만 자체적으로 4000병력을 뽑아낼정도는 되었기에 류큐입장에서는 해볼만한 싸움이었음에도 형편없이 깨졌다. 병력규모만 따지면 그렇다. 전투경험이나 무기등 세세하게 따지면 류큐 왕국이 불리했던건 사실이었지만 엄연히 화약 무기도 갖고 있던 류큐 왕국의 무장 수준이 시마즈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딸린다고보기만도 어려웠다. [[임진왜란]] 당시 오랜 평화에 군기강이 해이해진 [[조선]]이 숫적 열세[* 대표적으로 50명으로 왜군 2000명을 격파한 [[곽재우]]의 [[정암진 전투]]가 있다.]에도 여러번 왜군에게 승리한 것에 비해 류큐 왕국은 너무나도 형편없이 깨진게 맞다. (출처:[[https://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709]]) 다만 조선은 나름 덩치가 있다보니 초반에 몇 번 패배해 병력과 영토를 잃고도 다시 군을 모아 반격할 수 있었지만, 제해권 없는 섬나라인 류큐는 종심이 너무 짧았다. 한번의 패배가 멸망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실제로 그랬다. 5월 15일, 사쓰마는 [[쇼네이 왕]]과 100여 명의 신하들을 [[가고시마]]로 데려왔다. 결국 이들은 사쓰마에 충성의 맹세를 한 후, [[에도]]까지 끌려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알현하고 나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쟈나 웨카타 리잔은 끝까지 거부하였고, [[팽형|결국 끓는 물에 던져져 죽임을 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